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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친구, 포숙과 관중을 보라
입력: 2017.10.19 00:00
나보다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우정, 이러한 우정은 어떠한 어려움도 뚫고 나간다. G.무어의 말이다.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는 천 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에센바흐의 말이다.
한데 이번 추석에 일가 친척을 뛰어넘는 친구를 만나 끈끈한 우정을 나눈 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중국에선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간의 우정을 두고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부른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과 포숙의 사귐을 말하는데 ‘사기’의 ‘관안열전(菅晏列傳)’과 ‘여씨춘추’ 등의 고전에 두사람에 관한 고사가 실려있다.
젊었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던 관중과 포숙은 세월이 지나 제나라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나자 각각 반대편에 몸담게 되었다.
포숙은 공자 소백을 섬겼고, 관중은 공자 규를 모셨는데 결국 소백이 승리하였고 공자 규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규를 섬기던 관중 역시 포로가 돼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제나라 왕 환공이 된 소백은 관중을 죽이려고 하였다. 한창 싸움이 치열하던 와중에 관중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화살이 허리띠에 맞아 생명을 건졌지만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관중을 살려두기는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숙은 자신을 재상으로 삼으려는 환공에게 옛 친구였던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임금께서 제나라의 왕에 만족하시면 저를 쓰시면 됩니다. 하지만 천하의 패왕이 되려면 관중을 쓰십시오.” 그러자 환공은 “그는 활로 나를 쏘왔던 원수이니 그를 쓸 수 없소”라고 대답하며 반대했지만, 포숙의 거듭되는 천거에 마침내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 후 관중은 제나라를 잘 다스려 춘추시대 최강국으로 만들었고, 환공을 춘추 5대 패왕으로 만들었다. 훗날 관중은 자기 친구인 포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포숙과 장사를 할 때,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이 이익을 취했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포숙대신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해서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일에는 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번이나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번 전쟁을 나가 그때마다 도망쳤지만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모시던 공자 규가 싸움에서 졌을 때 같은 신하였던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나는 붙잡혀 치욕을 당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했지만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작은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높이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위의 글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마지막 구절이다.
친구란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나에게 생명을 준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장점이나 능력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단점도 알고 그것을 포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은 진정한 우정이 참 드문 시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우정보다는 이익을 좇아 사귀고, 이익이 되지 않는 순간 그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만났기에 더이상 만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명심보감’에는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할 정도지만 마음을 아는 친구는 몇이나 될까”라고 실려있다. 또한 같은 책에는 “술과 밥을 함께 하며 형·아우 하는 자가 천명이라고 해도,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고도 한다. 마치 요즘 세태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벗 우(友)’자는 ‘손 수(手)’자와 ‘또 우(又)’자가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다. ‘또 하나의 손’이 돼 나를 돕는 사람이 바로 친구인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한걸음 더 나아가 ‘친구는 또 하나의 자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정은 마치 또 하나의 자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이유에서다.
물질주의·이기주의가 팽팽한 현실에서 다시 한번 포숙과 관중의 우정을 새겨보았으면 한다.

< /고 운 석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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