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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상키아-요가철학, 바이세시카-니야야철학
입력: 2017.10.23 00:00
상키아학파는 요가학파와 결부되어 상키아-요가철학을 형성한다. 푸루샤를 찾는 실제 활동은 요가학파에 의해 제시되었다.
요가학파는 유신론적 경향을 띠며 심(心citta)에는 붓디, 아함카라, 마나스 이 세 개 힘의 측면만 있기 때문에 실제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식으로 푸루샤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실제 그 심(心citta)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고행을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심(心citta)은 무명(無明=avidya)을 비롯해 이로부터 생성하는 아견(我見), 탐욕(貪慾), 증오(憎惡), 현세집착(現世執着)의 다섯 번뇌(煩惱)를 가지며 이 때문에 업(業)을 짓게 된다. 이 번뇌와 업을 없애기 위해서 요가철학은 여덟 단계의 수행을 제시한다.
윤리적 덕목들의 실행인 금제(禁制), 다양한 형태의 공부를 권하는 권제(權制), 권제에서 공부는 책 보는 것을 포함해 중국적 쿵푸를 의미하는 것이다.
수행법의 기초인 좌법(坐法), 호흡법을 행하는 조식(調息), 감각기관을 거두어드리는 제감(除減), 보는 감각은 항상 외부 사물과 연관되어 있다. 감각을 외부세계에서 절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일종의 정신집중인 집지(執持)가 있다.
집지(執持)는 내 몸이 어느 하나에만 내 정신을 완전히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요가나 기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자기 몸의 병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위염 있어도 배가 약간 아플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요가나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위에 염증이 있는 것을 읽어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개의 합일 경지에 도달하는 정려(靜慮),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삼매 (三昧)가 있다.
쉽게 말해 요가는 상키아 철학을 대중화, 행동화한 것이다. 즉 대중화하고 몸으로 하는 행동으로 바꿔서 말하는 것이다.
상키아-요가철학은 이렇게 인도 사상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후대까지 이어졌다. 16~17세기에 활동한 비즈니아나빅슈는 상키아 철학을 해설한 ‘수론정요’를 썼고 요가철학을 해석한 ‘요가평서’·‘요가정수 강요’도 썼다.
상키아-요가 철학은 결론적으로 말해 본체론, 실재론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점으로 붓다의, 불교의 생기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본체는 실재하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이 있다는 붓다의 가르침에 반해서 여전히 우파니샤드의 전통인 본체론, 실재론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론을 펼침으로써 원래 우파니샤드의 사유를 약간 비틀었다고 볼 수 있다.
프라크르티만 보면 기(氣)일원론과 흡사 하지만 초월적인 푸루샤를 제시함으로써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일원론과는 다른 인도적인 철학, 해탈을 지향하는 인도철학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상키아 철학(이원론)과 요가 철학(유신론적 경향)은 결부되어 있다. 푸루샤를 찾는 실제 활동은 요가학파에 의해 제시되었다.
지식으로 푸루샤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실제 심心(無明, 我見, 貪慾, 憎惡, 現世執着)을 극복하기 위한 고행을 몸으로 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요가 철학의 여덟 단계 수행은 금제禁制(윤리적 덕목), 권제權制(공부), 좌법坐法(수행법 기초), 조식調息(호흡법), 제감除減(감각기관 배제), 집지執持(정신 집중), 정려靜慮(두 개 합일경지), 삼매三昧(속박 벗어남)다.
그러니까 요가는 상키아 철학을 대중화, 행동화한 것이다.
한 마디로 우파니샤드의 전통인 본체론, 실재론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붓다 불교의 생기론, 연기론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론=프라크리티+푸르샤(초월적: 철수가 죽으면 붓디, 아함카라, 마나스만 남는다)을 펼침으로써 원래 우파니샤드의 사유를 약간 비틀었다.
그래도 인도철학의 결론은 차르바카라는 유물론 학파만 빼면 무조건 해탈이다.
바이세시카와 니야야 철학도 자매관계다. 상키아 철학이 이원론의 사유라면 바이세시카는 다원론적 사상을 펼쳤다.
그러니까 근본 존재가 단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해탈의 측면에서 우파니샤드를 잇고 있다.
바이세시카 학파는 6가지 실재들(구의=범주=보편자들)로 설명했다.(명사, 형용사, 동사, 보편, 특수, 내속성=전체를 얘기하지 않고 부분을 얘기할 수 없다.
하나를 얘기하려 면 반드시 또 하나를 얘기해야 되는 것) 불교의 생기론을 비판하고 실재론의 입장을 견지했다.
니야야 학파는 바이세시카 학파의 존재론을 논리학=인식론으로 뒷받침하고자 했다. 그래서 니야야 학파는 아주 논리적이다.
결론적으로 바이세시카 학파는 현실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유를 제시함으로써 우파니샤드의 본래 사상과 또 불교와 다른 독창적 사유를 전개했다.

< /조 수 웅 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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