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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이동순 시인의 농구(農具)노래
입력: 2017.10.25 00:00
해동공자 최치원은 통일신라시대까지 해독이 안 되던 천부경을 해독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천부경 81자를 해독하지 못했다면 지금도 경전의 가치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됐다는 우리민족의 옛글자 가림다(加臨多)로 새겨진 비문을 백두산을 찾았다가 한자로 번역해서 전해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최치원 선생의 깊은 학문에만 탄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바로 알게 하고 계승할 수 있게 한 위대한 인물로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옛것에는 말이나 글, 문화소산물들이 당대의 얼과 얽혀 살았던 조상들의 생활상으로 객관화되어 역사가 된 것이 있고, 사장된 것들이 있다. 발전, 혹은 진화라는 맥락에서 묻혀버린 것들을 당연시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것들 중에 훗날에는 무엇이 그런 처지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문화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화의 소중한 것들 속에 인간의 삶을 둔 것은 신의 창조영역으로 모든 인간 속에는 종교의 본성이 들어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여 우리문화의 소중함이 여느 때보다도 절실해지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도 가볼만한 곳이 참 많다고 말이다. 세계여행에서 국내여행으로 선회하는 모습처럼, 더 친숙한 우리들의 일상을 말하고 전하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의 살아있는 글쓰기가 바람직스럽게 느껴지고 있다.
우리의 것이 세계화되고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도시와 농촌, 농촌과 도시라는 이중구도적인 관념을 깨고 공간적 의미를 자연친화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건강한 우리사회의 전망이다.
80년대 ‘農具노래’ 연작시를 발표한 이동순(李東洵) 시인의 시는 일찌감치 이러한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예견하고 있었음직하다.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창비, 1986)의 표사 글에서 김규동 시인은 “유용한 말, 그중에서도 때 묻지 않은 말을―아니 때가 묻어 못 쓰게 되었다하더라도 시인의 가슴으로 따뜻이 녹여 써야 할 새롭고 튼튼한 우리말을 지켜나가는 신념이 지금처럼 아쉬운 때는 없는데, 이동순씨는 이러한 노력을 詩作(시작)과 결코 떼어서 생각하지 않은 좋은 데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같은 글에서 성민엽 문학평론가는 “‘農具노래’ 연작의 진정한 주제는 농업사회적 전망의 추구인 셈이다. 그것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 대지와의 친화, 공동체적 삶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세계상의 추구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추구야말로 우리문화의 힘이며, 영력의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작시 ‘農具노래’ 가운데 ‘종다래끼’를 읽어본다.
“할 수만 있다면/싸릿대로 이쁘게 엮은 종다래끼 하나/멜빵 달아 어깨에 메거나/배에 둘러차고 우리나라의 고운 씨앗을 한가득 담아/남천지 북천지 숨가삐 오르내리며/풀나무 없는 틈이란 틈마다 씨를 뿌리고/철조망 많은 무장지대 비무장지대/폭격 연습 한 뒤의 벌겋게 까뭉개진 산허리춤에다/온통 종다래끼 거꾸로 쏟아 씨를 부어서/저 무서운 마음들을 풀더미 속에 잠재우고도 싶고/또 할 수만 있다면/짚으로 기름히 엮은 종다래끼 하나/어깨에 메거나 배에 둘러차고/충청도 물고기 담아가서 황해도 시장에 갖다 주고/함경도라 백두산 푸른 냄새를 그득그득 담아와서/철없는 내 어린것에게 맛보이고 싶어라/이남의 물고기 맛과 이북의 풋나물 맛이/한가지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라/아,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우리나라는 하나여라 하나여라/하나여라”(‘종다래끼’ 전문)
종다래끼는 다래끼보다 조금 작은 것을 말하는 데 짚이나 싸리, 대 등으로 엮은 주둥이가 좁고 밑이 넓은 바구니를 말하는 이 다래끼를 방언으로 다람치라고도 한다.
시인은 종다래끼 안에 씨앗을 넣고, 물고기를 담아서 남북으로 오가며 하나를 이루고 싶은 민중의식과 역사의식을 통해 진정한 이 땅의 주인 됨의 의식을 표출해내고 있다.
종다래끼는 이제 하나를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
그 역할이 농사도구에서 역사를 담는 역사도구의 쓰임새로 민족의 기억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니 말이다. 종다래끼는 황해도, 함경도, 충청도 사람들이 썼던 옛 물건이다. 이제는 잊히고 있는 농촌살림살이 중 하나이지만 시인은 참마음으로 농구들을 단순한 농업 생산 도구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처럼 숨 쉬고 인격을 가진 주체로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사라질 운명 속에 놓인 농구, 종다래끼를 그리움 속에서 떠올려보고 그 뜻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시인의 노력이 우리들의 망각에서 지켜주고 소중하게 건져내주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새벽을 알리는 새벽닭과 같으며, 계시를 받아내는 제사장 같다면 이동순 시인의 ‘종다래끼’를 읽음으로써 시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시적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 한번쯤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 /정 홍 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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