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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매칼럼>대승불교의 성립
입력: 2017.11.06 00:00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에 대응하는 개념인데, 서기 1세기 정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대승불교의 성립은 출가자와 재가자 문제에 있다.
힌두교도 인도사회에 뿌리를 내려 오늘날까지 인도를 지배하는 것은 재가와 출가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속적 삶과 영속적 삶의 문제인데, 두 삶이 지닌 논리적, 공간적 모순을 시간적 연속성의 방식으로 해결해 줌으로써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불교도 이와 유사하다. 만약 불교를 믿기 위해 속세와 단절하고 산에 들어가야만 한다면, 재가자들은 깨달음의 길에 도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재가자들도 출가자들의 특권, 신비주의,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일반적이고 대중화된 방식의 불교를 추구할 수 있게 한 것이 대승불교다.
불교가 인도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은, 많은 지역과 종족을 하나로 엮어 나타난 최초의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 때, 그가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줬기 때문이다.
종교는 삶의 고뇌나 고통, 대중들의 비탄, 삶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생기는 것이어서, 수준 높은 이론적인 방식 즉 철학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특정한 인물의 희생과 카리스마적인 행동, 감명 등으로 성립한다.
예컨대 기독교는 예수가 세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예수의 행적을 내세워 만든 것인데,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예수가 고도의 사유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가 나타났을 때 히브리 민족의 상황,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극적인 수난이 사람들에게 미친 감동에 종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와 철학은 판이하게 달라, 배가 부르면 이미 종교의 본질에서 떠난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아쇼카왕의 숭불정책에 의해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진 것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삶의 고뇌가 많이 없어진 것이다. 배고픈 것이 아니어서 유일하게 남는 건 개인적인 해탈이 된다.
이런 소승불교에 대한 공격으로 대승불교가 등장한다.
대승과 소승 개념을 일방적으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대승불교는 “종교의 본질을 평안한 상태에서 도 닦는 게 아니고 삶의 현장 속에서, 고통 속에서, 대중적 삶 속에서 붓다의 얘기를 실현하려는 그런 맥락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소승과 대비되는 ‘대승(大乘)=큰바퀴, 마하연’이라고 불렀다.
개인이 열반에 드는 것만이 아니라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목적으로 한 대승불교의 이상은 소승불교의 이상, 해탈한 아라한(阿羅漢)이 아니라, 보살(菩薩)이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준말이다. ‘bodhisattva’에서 보디(bodhi)는 깨달음이고 sattva는 유전(有情)이다.
즉 보리살타는 깨달음을 통한 유정이다. 원래 이 말은 성불하기 전의 붓다를 가리켰지만 대승불교에 오면,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변한다.
아라한이 목표가 아니라 보살이 목표다.
그래서 보살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붓다를 신앙하는 일신교가 아니라 여러 보살들을 신앙하는 다신교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유신론은 아니다. 다만 붓다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보살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구원을,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실천을 담당하는 등 많은 보살들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더 파격적인 것은 붓다의 복수화다. 이것은 일반적인 종교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예컨대 중세 기독교에서 누구든 노력하면 예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면 화형깜이다.
불교는 지중해 세계의 종교들, 인도 종교와 성격이 많이 달라, 수많은 붓다가 존재하는데 역사적인 붓다가 화신(化身)이고 보살이 자기 노력에 의해서 붓다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보신(報身)이다.
그 가장 전형적인 예가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그래서 무서운 일을 당하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여(眞如)의 깨달음 그 자체인 법신(法身)이 있다. 이른바 삼신설(三神說)을 제기한다.
붓다의 근본은 물론 하나지만 그 붓다가 무수하게 많은 붓다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까, 인간의 사고가 이미지와 개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지각하는 차원이 이미지의 차원이라면 이성이나 감정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을 통해 의식하는 게 있다.
그런데 이미지로 이해했던 것도 이미지만 가지고 만족을 못한다. 저것은 뭣인가 하고 사유 하게 된다.
즉 개념화 한다. 역으로 개념만으로 만족을 못한다. 그 개념을 그리고 싶어 하고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형상화(形象化figuration) 한다.

< /조 수 웅 前 전남문협 회장 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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