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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매칼럼>위안부 아픔과 日 고구려 마을
입력: 2017.11.09 00:00
악을 행하고 나서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은 악한 중에서도 선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잇어 반성은 커녕 철면피하고 있다.
日 자신들이 섬기는 아키히토(明仁) 왕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거늘 과거의 잘못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당에, 일본군위안부 동원에 일본 정부가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일본 공문서가 지난 19일 번역돼 공개됐다.
호사카유지 세종대 교수는 이날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이 위안부를 조직하는 과정에 일본 정부가 편의를 제공했다”며 관련 자료를 발표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번에 ‘종군위안부 관계 자료 집성’을 번역·분석했다.
이 자료는 일본 정부가 작성해 보관하던 공문서를 아시아여성 기금이 편집해 1997년 출판한 것이다. 호사카교수는 일본 도쿄 태생으로 한·일 관계를 연구하다 2003년 한국에 귀화했다.
2009년부터 세종대독도종합연구소장을 맡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박해 왔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일왕 직속으로 운영돼 ‘황군’ 소리를 들으며 막강한 권한을 누렸다.
일본 정부는 군 결정에 전적으로 따랐다 호사카 교수는 “중국 주둔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을 결정해 현지 일본 외무성 총영사관에 협조를 요청하면 총영사관이 내무성에 의뢰해 각 경찰서에서 위안부 모집을 허가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영사관 내 무관실이 위안소 설치와 성병 검사를 준비하고, 영사관은 업자와 위안부의 도항을 책임진 뒤 항구에서 헌병대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런 내용이 담긴 문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일본 내무성 경찰국 1938년 2월 7일자 ‘시국 이용 부녀 유괴 피의 사건에 관한 건’ 문서에는 ‘내무성에서 경찰에 비공식적으로 위안부 모집에 관해 의뢰해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는 등 등의 경찰서장 진술이 있다. 한데도 반성이 없다.
그들의 몸에서도 일왕이 인정한 한국인의 피가 흐를 수 있는데 그 근거를 찾으면 도쿄에서 70km 떨어진 사이타마현 히다카시는 ‘고구려 마을’이다.
기차역 이름도 ‘고마(고려)역’과 ‘고마가와(고려천)역’이다. 고려는 일본에서 고구려를 뜻하는 말로 ‘고마’ 또는 ‘고쿠리’라고 발음한다. 고려 왕조는 ‘고라이’로 구분해 부른다. 이 일대의 지명과 성(姓)·학교·기업은 물론이고 신사 이름에도 ‘고려’가 붙어 있다.
고마진자(고려신사)는 고구려 멸망 후 일본에 정착한 유민들이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일본명 고마노잣코)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고약광은 666년 외교사절도 파견됐다가 패망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남았다. 참고로 신라는 왕이 박씨 석씨에 이어 김씨로 내려 왔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주로 고씨로 내려왔는데 특히 고구려는 마지막 왕 보장왕까지 내려왔다.
고대 역사서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따르면 고약광이 일본에서 703년 왕성(王姓)을 받고 716년 고구려 유민 1799명을 모아 고마군(고려군)을 창설했다.
지난해에는 재일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신사입구에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세발 달린 까마귀)를 새긴 ‘고마군 창설 1300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현재 궁사(신사 책임자)는 약광의 60대 후손인 고마후미야스가 맡고 있다.
신사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말미에 고마가 좋다 일본이 좋다 한국이 좋다라고 외치곤 한다.
고구려 유민의 흔적은 중국 몽골 태국 등에도 있지만 이곳만큼 뿌리가 깊은 곳은 드물다. 고려군이 설치된 지 42년 뒤엔 신라군이 생겼다.
규슈에는 백제마을이 있다. 오사카의 백제주를 가르키는 일본어 ‘구다라스’는 백제 고어(古語) 큰 나라에서 유래했다.
부여의 ‘구두레’라는 지명과 맞닿았다. 구마모토와 공주의 옛이름 웅진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 “백제 무령왕(501~523재위)의 자손인 내몸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내년 퇴위를 앞둔 그가 9월 20일 고마(고려) 신사를 참배했다.
왕위를 물려주기 전에 한반도를 상징하는 신사를 방문해 과거사 반성과 화해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9세기 행정구역 개편 때 바뀐 지금의 히카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한국과 일본이 공존한다. 언젠가는 한·일 정상이 이곳에서 만날 장면을 그려본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만 따지면 ‘가깝고도 먼’ 이웃이지만, 일본이 유구한 역사의 뿌리를 생각 반성한다면 가깝고도 가까운 두 나라일성 싶다.

< /고운석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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