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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7(화) 18:04
동북아의 철학과 서양의 근대문화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18년 06월 25일(월) 00:00
전통 사회에서 철학은 대체로 관조적 성격을 띠었다. 주희에게서 사물의 리理는 본연本然이었고 수많은 리理들의 체계는 원융圓融의 성격을 띤다.
그래서 중세는 철학적으로는 본연과 원융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본연은 마땅히 어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전제되는 것이고 원융은 모든 사물은 각자의 리理를 가지고 있고 그 리理들의 관계는 하나의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부분과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본연과 원융에는 도덕형이상학의 구도와 심미적 관조가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들의 세세한 면면들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사물에 대한 조작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정화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선입견, 편견, 분노, 아집 등이 내 마음을 가로막고 있으면 그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경궁리居敬窮理’는 바로 이 생각을 나타낸다.(금에 은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것은 순수한 금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이것은 객관주의적 성격의 과학도 주관주의적 성격의 불교와도 다른 그 무엇이다.
주희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물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아니라 세계 전체에서 사물들이 보여주는 본연성과 원융성이었다.
주희의 주지주의와 관조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대나무를 계속 바라보았다는 왕양명의 이야기(왕양명이 주희의 주지주의와 객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계속 바라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는 이야기)는 역으로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식이란 얼마나 관조적인 것이었던가를 말해 준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사대부 계층이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중인 계층과 사대부 계층 사이에는 단절이 있었고, 그래서 형이상학과 실용적인 기술이 발달했을 뿐 과학은 발달하지 않았다.
청대, 조선 후기, 일본 에도 후기 정도(17세기 정도)에 이르면 사회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많은 변화가 발생하며 경험적 측면을 중시하는 사상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자연 연구에서 비약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바람에 대한 화담 서경덕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의 이해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한다(서경덕은 다른 성리학자들이 잡학이라고 불렀던 학문들에 몰두했다).
그러나 사물들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이해는 유럽에서 발달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논의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여러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통 철학에서 ‘theoria’는 관조를 뜻했으며, 형상들의 원융한 체계를 관조하는 것이 중요했다. 중세에 가면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진다.
서양사람들은 신학적인 세계관을 자연에 투영했지만 동북아에서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인간사회를 만들어갔다.
헬라스적 합리주의와 히브리적 초월론이 대립했다. 서구 중세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신과 세계를 연속으로 볼 것인가 불연속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는 신과 세계를 불연속으로 본다.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가 서구 스콜라철학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이유는 신조차도 논리의 법칙을 따라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근대문화는 헬레니즘/히브리즘을 점차 눌러서 그리스적인 합리성이 조금씩 승리를 거두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철학도 결정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히브리 철학도 결정론인데 그 결정론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헬라스의 결정론이 우주가 카오스, 즉 혼돈이 아니라 이법에 따라 움직이는 코스모스라는 데에 있다면 히브리 종교의 결정론은 이 세계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근대가 성숙해가면서 점차 헬라스적 사고가 힘을 얻게 된다. 기독교도 물론 결정론이지만 이신론적 경향(절충)이 강해진다. 이것은 과학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한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합리적 전통과 경험적 전통이 평행을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철학에서는 종교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과 양립하지 않고 경험주의와 양립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관조에서 분석/조작으로 바뀜에 따라, 실험적 태도 등장, 도구들(현미경, 망원경 등)의 사용, 신분적 이동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과학들은 여전히 헬라스적 특징을 띠었다. 처음에는 기하학적 설명이 주류를 이루었다. 즉 설명방식이 점차 대수적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하늘에 대한 관조에서 구체적 연구로. 망원경에 의한 달 관찰, 케플러의 타원 등이 그 예다.
(※이 글은 이정우 교수 ‘아트앤스터디’수강록에서 발췌·요약·첨삭한 것임을 밝혀둔다.)
/조 수 웅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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